칠성사이다는 1950년 5월 출시돼 올해 60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탄산음료다.

imagesCAOLM4R6.jpg일본에서 청량음료학을 전공한 박운석은 40년대 평양의 금강 사이다 공장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정정이 혼란스러워지자 평양에서 피복 공장을 하던 최금덕 등과 남한에서 사이다를 만들어 보기로 의기 투합했다. 박운석은 청량음료 제조설비인 주입기와 혼합기 등을 갖고 47년 월남했다. 최금덕은 피복 공장을 판 돈을 댔다. 이들 외에 월남한 실향민 4명과 충남 당진 출신 한 명 등 7명이 모였다. 이들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캐러멜 공장이 있던 서울 용산구 갈월동 터에 공장과 사무실을 세웠다.

50년 5월 9일 첫 제품인 칠성사이다가 생산됐다. 처음엔 주주로 참여한 7명의 성씨(姓氏)가 모두 다른 점에 착안해 칠성(七姓)으로 했다가 주주들의 단합과 회사의 번영을 바라는 뜻으로 북두칠성에서 이름을 딴 칠성(七星)으로 바꿨다. 지하수에 섞인 불순물 때문에 말썽이 일었던 기존의 다른 사이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기본 재료인 물을 정제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66년엔 일본산 시오노향 대신에 레몬과 라임에서 추출한 네덜란드산 천연향인 나르당향으로 바꿨다. 깨끗한 물과 천연 향료·설탕·구연산 등을 적절히 배합하는 비율은 칠성사이다만의 노하우. 외부에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연구소와 생산 라인의 핵심 인력 몇 명만 정확한 배합 비율을 알고 있다.

동방청량음료에서 칠성음료공업(68년), 칠성한미음료(73년)를 거쳐 74년 롯데가 새 주인이 됐다. 하지만 브랜드와 배합 비율은 줄곧 그대로 유지됐다.

다른 탄산음료의 도전이 거세지자 80년대부터 칠성 사이다에 ‘3무’(무색소·무카페인·무인공향료)의 깨끗한 이미지를 입혔다. 롯데는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인 91년 칠성사이다 광고를 백두산에서 찍는 모험을 했다. 당시 필름을 중국 공안에 압수당했다가 돌려받는 우여곡절 끝에 광고를 내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칠성사이다는 2004년 3400억원어치가 팔린 것을 정점으로 다소 매출이 줄었지만 지난해에도 여전히 2700억원어치가 팔렸다. 수많은 사이다 제품의 도전 속에서도 지난해 사이다 시장의 78%를 점유했다. 60년 동안 150억 병 이상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