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숙 

1. 들어가면서

images.jpg 얼마 전에 방정환(1899-1931)이 낸 잡지 《어린이》(1923-1934, 1948-1949)를 꼼꼼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깨알같은 글씨로 가득 채운 글 가운데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독자 담화실'을 가득 채운 어린 독자들의 편지였다. 어쩌면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동화를 좋아하고 동요를 좋아하고 《어린이》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그 가운데 당연 으뜸이 방정환이다. 전국에 수많은 《어린이》독자들은 방정환을 한 번 만나기가 소원이고 방정환의 이야기 듣기가 소원이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방정환 보다 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방정환에 대한 연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저 막연하게 옹호하거나 부분을 확대해서 비판하는 몇몇 글이 있을 뿐 진정 아이들이 사랑했고, 또 아이들을 사랑했던 방정환의 진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내년이면 방정환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저기서 방정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작년 12월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 기념 사업회'에서《소파 방정환 문집》(하한 출판사)도 냈다. 여러 잡지와 신문을 꼼꼼히 뒤져 방정환의 거의 모든 글을 모아 놓았는데 방정환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다른 글은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동요 부분은 잘못 되어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번역과 창작에 대한 구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뚜렷하게 다른 사람으로 확인되는 작품도 방정환 동요로 되어 있었다. 거기다 동요나 동시도 엄연히 한 시인이 독특한 자기 세계를 이룬 창작품인데 함부로 연이나 행이 바뀌어 있고 가끔은 시어도 달라져 있다. 한 작가의 문학 세계를 연구할 때 기초 자료를 조사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우리 어린이 문학 연구는 방정환에 대한 기초 자료조차 제대로 조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방정환 연구를 1차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에서 방정환 동요 연보를 새롭게 정리해 보려 한다. 방정환 동요에 대해 잘못 알려진 몇몇 사실을 바로잡고 방정환의 창작동요로 뚜렷하게 인정되는 작품을 중심으로 방정환 동요의 세계를 간단히 살펴보자.

2. 〈형제별〉은 창작동요인가?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형제별, 《어린이》1권8호, 1923.9.)

지금까지 <형제별>은 방정환의 창작동요로 널리 알려져 왔다. <형제별>의 쓸쓸하고 슬픈 가락이 나라 잃은 우리 겨레의 모습과 닮아 어린이들에게 폭넓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정인섭이 엮은 《색동회 어린이 운동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비치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집니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으나 구슬픈 맛이 애틋하게 났다.
"윤극영, 어때?"
"좋긴 좋은데 누가 번역했나?"
"내가 했지."
우린 한바탕 웃었다. 그 노래는 나까가와(中川)라는 일본 사람이 작곡한 일본 노래였다. 그러나 그 구슬픈 곡조가 나라를 잃은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색동회 어린이 운동사》 정인섭, 학원사, 43-44쪽)

윤극영이 방정환을 만나 얘기를 나눈 대목이다. '나까가와(中川)라는 일본 사람이 작곡한 일본 노래'를 직접 확인해야 좀더 분명하겠지만 이 글만 보면 <형제별>은 방정환의 창작동요가 아니라 일본 노래를 번역한 번역동요다. 윤극영이 방정환과 이 이야기를 나눈 때를 1923년 3월로 기억하고 있으니 <형제별>이 《어린이》에 실리기 몇 개월 전 얘기다.《어린이》 에 실린 <형제별>을 찾아보니 그곳에도 방정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정순철 이름만 나온다. 정순철은 20년대 많은 동요를 작곡하여 1929년에 《갈잎피리》라는 동요집을 낸 동요 작곡가인데 아마도 일본 사람이 작곡한 <형제별>을 다시 우리 노래로 작곡한 듯싶다.

방정환의 동요 가운데 <여름비>(《어린이》 4권7호, 1926.7.)도 번역동요다.《어린이》에는 방정환이 흔히 쓰던 다른 이름 '잔물'로 되어 있으나 정순철 동요집 《갈잎피리》에 번역으로 나와있다. 윤석중이 쓴 <한국 동요 문학 소사>(《예술논문집》, 대한민국 예술원, 1990)에도 <여름비>는 일본 시인 샤이죠 야소(西條八十)의 작품을 방정환이 번역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런 사정을 미루어보면 방정환의 다른 동요 가운데도 번역동요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윤석중은 방정환의 <가을밤>(《어린이》 2권6호, 1924.9.)도 사이죠 야소(西條八十)의 작품을 번역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같은 글) <가을밤>이 어떻게 방정환의 창작동요로 지금까지 알려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이》에도 작품만 나와 있을 뿐, 지은이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윤석중의 글이 자료에 근거하기 보다 기억에 의존한 글이라 좀더 조사가 필요한 일이지만 방정환이 초창기 우리 동요문학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동요를 여럿 번역하여 소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따로 자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이원수도 방정환의 일본 동요 번역 작품인 <갈매기>와 <카나리아>를 소개하고 있다.(<아동문학입문> 1965,《이원수 아동문학전집 28》, 웅진, 51-52쪽) 지금 생각으로는 <산길>(《어린이》 4권8호, 1926.9.)도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번역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화만으로 시를 끌어가는 기법이나 따옴표("")를 직접 쓴 일, 그리고 20년대 대부분 우리 동요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장난스런 내용이 우리 동요와는 다른 느낌이다. 

3. 삼봉 허문일은 소파 방정환인가?

지금까지 '삼봉 허문일'은 '소파 방정환'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재철의 《아동문학사전》(계몽사)에 보면 방정환의 다른 이름이 여럿 나오는데 그곳에 '허문일'과 '허삼봉'이 있다. 이 생각은 별 고민 없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는데 이번에 나온 《소파 방정환 문집》에도 똑같이 반복되어 있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허삼봉'과 '허문일'은 방정환과 다른 사람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쉽게 2-30년대에 나온《조선동요선집》 (1928), 《갈잎피리》(1929),《조선아동문학집》(1938) 같은 책을 살펴보면 모두 방정환 동요와 허문일 동요를 따로 싣고 있다. 또 1927년 10월에 나온 《어린이》(5권7호) 독자 담화실을 보면 허문일의 호가 삼봉이며 개벽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글이 나온다. 허문일은 방정환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품을 여럿 발표하는데《어린이》만 봐도 1931년 8월 방정환 추도호에 <뒷집 영감>이라는 동요를 허문일 이름으로 발표했다. 뒤에 연구자들은 이 <뒷집 영감>을 방정환의 유고작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방정환 추도호에서 방정환 유고작을 허문일 이름으로 발표할 까닭이 없다. '어린이 독본'에 실렸던 방정환 유고작을 방정환 이름으로 크게 소개하고 있는 것과 견주어 봐도 알 수 있다. 삼봉 허문일은《조선농민》《농민》《어린이》 를 중심으로 여러 편의 소설과 시, 동요를 발표한 사람인데 방정환과는 달리 농민문학을 지향하고 있다. 허문일의 동요를 꼼꼼히 읽어봐도 방정환 동요와는 차이가 있다. 허삼봉 이름으로 발표한 <우리집> 한 편만 읽어 보자.

우리 집은 가난뱅이
농사꾼의 집
여름내내 땀흘리며
기음 매고도
겨울에는 쌀이 없어
굶주리는 집

우리 집은 산골 동리
작은 초가집
긴긴 낮엔 할머니가
혼자 지키고
밤에는 다섯 식구
모여 자는 집

우리 집은 찌그러진
오막사리 집
내가 내가 얼른 커서
어른이 되어
커다랗게 훌륭하게
다시 지을 집

(우리 집,《어린이》9권5호, 1931.6.)

이 동요에는 방정환 동요에서 흔히 나타나는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가 없다. 오히려 '찌그러진 오막사리 집'에서 '쌀이 없어 굶주리는 집'일 망정 이 시의 화자인 아이는 아주 씩씩하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야 했던 그 당시 농민들의 삶과 그래도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동요에 담으려한 시인의 태도에서 농민문학을 지향했던 방정환과 다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허문일을 방정환으로 잘못 오해한 일은 동요 연구에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허문일은 《어린이》에 동요 외에도 몇 편의 다른 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꾀나는 걸상>(《어린이》 5권6호, 1927.7.), <삼부자의 곰잡기>(《어린이》 8권6호, 1930.7.), <천공의 용소년>(《어린이》 8권8-9호, 1930.9-11.) 같은 글이 허문일의 작품이다. 이 가운데 <삼부자의 곰잡기>는 방정환 동화집 《사랑의 선물》(신구미디어, 1992)에도 방정환 동화로 소개되어 있다.

3. 다시 쓰는 방정환 동요 연보

이제 방정환 동요 연보를 다시 정리해 보자. 연구자들에 따라 조금 생각이 다른 경우가 있으므로 기존에 연구되어 있는 방정환 동요 연보를 먼저 살펴보자. <<소파 방정환 문집>>에 있는 것을 ①, 《소파 방정환의 아동교육 운동과 사상》(안경식, 학지사, 1994)에 있는 것을 ②로 표시한다. 《어린이》영인본에 없는 <물새>와 <어머니>를 빼고 날짜와 발표자는 새로 확인했다. 뒤에 밝혀져 있는 이름은 발표지에 나타난 것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발표지에 이름이 없는 경우이다.

<형제별>, 《어린이》1권8호, 1923.9. 정순철 ①②
<가을밤>,《어린이》 2권9호, 1924.9. ①
<귀뚜라미 소리>, 《어린이》 2권10호, 1924.10. 소파 ①②
<늙은 잠자리>, 《어린이》 2권12호, 1924.12. 잔물 ①②
<첫눈>, 《어린이》 2권12호, 1924.12. 三山生 ②
<잘 가거라 열다섯 살아>, 《어린이》3권12호, 1925.12. ①
<눈 오는 새벽>, 《어린이》4권2호, 1926.2. ①②
<여름비>, 《어린이》 4권7호, 1926.7. 잔물 ①②
<산길>, 《어린이》 4권8호, 1926.8-9합호. 잔물 ①②
<봄>, 《어린이》 5권4호, 1927.4. ②
<물새>, 《어린이》 5권5호, 1927.5-6. 삼봉 ①
<소낙비>, 《어린이》 7권6호, 1929.7-8합호. 허문일 ①②
<길 떠나는 제비>, 《어린이》 7권8호, 1929.10. 허삼봉 ①②
<기와 한 장>, 《어린이》 8권6호, 1930.7. 허문일 ①②
<눈>, 《어린이》 8권7호, 1930.8. 방정환 ①②
<엄마 품>, 《어린이》 8권10호, 1930.12. 허삼봉 ①②
<바람>, 《어린이》 8권10호, 1930.12. 허문일 ①②
<어머니>, 《어린이》 9권4호, 1931년 어린이날 기념호, 허삼봉 ①
<첫여름>, 《어린이》 9권5호, 1931.6. 허삼봉 ①②
<우리 집>, 《어린이》9권5호, 1931.6. 허삼봉 ①②
<개아미의 활동>, 《어린이》 9권5호, 1931.6. 허삼봉 ②
<뒷집 영감>, 《어린이》 9권7호, 1931.8. 허문일 ①②

이제 여기서 삼봉 허문일의 작품을 빼보자. 그리고 다시 동요 형식을 빌어 발표되었지만 방정환 이름도 없고 차례에 '권두(卷頭)'라고 되어 있는 <잘 가거라 열다섯 살아>와 <눈 오는 새벽>도 빼자. 또 차례에 '동요'라고 되어 있지만 누구 작품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봄>과 '三山生'을 방정환이라고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니 <첫눈>도 빼자.

이제 남은 것은 일곱 편 뿐이다. 여기에 <<어린이>> 영인본과 정순철 동요집 <<갈잎피리>>, 감상 동요 선집 <<색진주>>(1933)에서 방정환 동요인 것을 확인한 <나뭇잎배>와 방정환의 글 <동요 <허잽이>에 관하여>(동아일보, 1926.10.5-6.)에서 제목을 확인하고 문병찬의 글 <소금쟁이를 논함>(동아일보, 1926.10.2.)과 <<조선동요선집>>(1928)에서 내용을 확인한 <허잽이>를 더하면 새로운 방정환 동요 연보가 된다. 이 가운데 <나뭇잎배>는 <<어린이>>에 발표자 이름이 없는 것이나 <가을밤>과 똑같이 편집된 형태를 보면 번역일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좀더 뚜렷한 자료를 찾아야 되겠지만 이원수 글 <아동문학입문>에 나오는 방정환 번역 동요 <갈매기>와 <카나리아>도 방정환 동요 연보에 넣을 수 있겠다.

<형제별>, <<어린이>> 1권8호, 1923.9. 번역
<나뭇잎배>, <<어린이>> 2권6호, 1924.6. 창작(?)
<가을밤>, <<어린이>> 2권9호, 1924.9. 번역
<귀뚜라미 소리>, <<어린이>> 2권10호, 1924.10. 창작
<허잽이>, <<어린이>> 2권10호, 1924.10(?). 창작
<늙은 잠자리>, <<어린이>> 2권12호, 1924.12. 창작
<여름비>, <<어린이>> 4권7호, 1926.7. 번역
<산길>, <<어린이>> 4권8호, 1926.8-9합호. 번역(?)
<눈>, <<어린이>> 8권7호, 1930.8. 창작
<갈매기>, 발표지와 연대 미상, 번역
<카나리아>, 발표지와 연대 미상, 번역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방정환 동요는 번역과 창작을 합쳐 몇 편 되지 않는다. 방정환의 몇 몇 동요가 빠졌을 수도 있지만 이것만 보면 방정환은 소년회를 이끌고 《어린이》 잡지를 만들며 많은 동화구연을 한, 아이들의 진정한 동무였지만 동요 창작에는 힘을 기울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초창기 우리 근대 아동문학을 개척하는 자리에서 방정환은 동화와 마찬가지로 동요에서도 외국 동요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이나 새로운 창작 동요를 적극 권장하는 일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어린이》 창간호에 전래 동요 <파랑새>를 소개했던 것이나 크게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래 동요를 모으는 광고를 낸 것(《어린이》 6권6호, 1928.10.)을 보면 전래 동요도 결코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다.

방정환은 비록 스스로는 많은 동요 작품을 남기지 않았지만 이 땅에 처음으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는 문학'으로써 동요를 정착시켰고 《어린이》로 이원수, 윤석중, 윤복진, 신고송, 서덕출, 최순애 같은 많은 동시인을 키워낸 것은 우리 동요, 동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4. 방정환 동요의 세계

이제 창작동요를 중심으로 방정환 동요를 몇 편만 읽어보자.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 갈 것은 동요 작품에 대한 원본을 확정하는 일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뒤에 나온 방정환 동요들이 처음 발표 때와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귀뚜라미 소리> 동요만 봐도 처음 《어린이》에 발표 된 것과《소파 방정환 문집》 에 실린 것이 많이 다르다. 제목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귀뚜라미>로 바뀌어 있고 시행도 함부로 나누어 전체 3년 6행의 시를 3년 11행의 시로 바꾸어 놓았다. 또 두 번이나 반복되면서 이 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귓드르르'란 의성어가 '귀뚜르'로 바꼈고 마지막 행 '달밤에'가 '뜰 앞에'로 바꿨다. 동요나 동시를 포함하는 시문학에서는 시어 하나 정하는 것부터 행이나 연 하나 나누는 것까지 그 시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 아동문학에서는 아직까지 꼼꼼하게 원본을 확정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어린이》 영인본에 실린 작품을 원본으로 방정환 동요를 살펴보려 한다.

방정환 동요는 한 마디로 아주 쓸쓸하고 슬프다. 이원수는 이런 방정환 문학을 '슬픔을 같이 보고, 같이 울어주는 문학'(《어린이》1965,《이원수 아동문학 전집 29》, 웅진, 170쪽)이라고 했다. 또 흔히 방정환 동요를 눈물주의, 감상주의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원수는 이 감상성이 '꿋꿋한 의지와 함께 있는 여린 연민의 정의 소산이요, 그것은 억압당하는 민족의 슬픔과 구박받는 아동들에 대한 동정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같은 글)이라 했다. 방정환 동요를 읽어보면 이원수의 이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귀뚜라미 귓드르르 가느단 소리
달-님도 추워서 파랗습니다.

울 밑에 과꽃이 네 밤만 자면
눈 오는 겨울이 찾어온다고

귀뚜라미 귓드르르 가느단 소리
달밤에 오동닢이 떨어집니다.

(귀뚜라미 소리, 《어린이》2권10호, 1924.10.)

늦가을의 밤 풍경을 개인 감정 드러내는 일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동요다. 어느 늦가을 밤, '가느단'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쓸쓸한 그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을까? 날씨는 추워서 하늘의 달님마저 파랗게 보이는데 울 밑에는 과꽃이 쓰러질 듯 피어있다. 여전히 귀뚜라미 소리는 쓸쓸히 들리고 마당 가 오동나무에서는 몇 개 안 남았던 커다란 잎 하나를 또 떨군다.

쓸쓸한 늦가을 밤의 모습이 눈앞에 환히 드러난다. 거기다 율조도 7.5조를 약간 바꾸어 정형률의 답답함이 조금 덜하고 두 번 반복된 의성어 '귓드르르'가 우리를 시 속에 강하게 끌어들인다. 시인은 어찌 이렇게 쓸쓸한 모습에 눈길을 주었을까? 이 시리도록 차갑고 눈물 나도록 쓸쓸한 모습이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모습과 닮아 보였을까?

수수나무 마나님
좋은 마나님

오늘 저녁 하루만
재워주시오

아니아니 안돼요
무서워서요

당신 눈이 무서워
못 재웁니다.

잠잘 곳이 없어서
늙은 잠자리

바지랑대 갈퀴에
혼자 앉어서

추운 바람 슬퍼서
한숨 쉴 때에

감나무 마른 잎이
떨어집니다.

(늙은 잠자리,《어린이》 2권12호, 1924.12.)

이 동요도 <귀뚜라미 소리>와 마찬가지로 추운 늦가을이 배경이다. 겨울이 오려는 늦가을에 이제는 힘이 다한 늙은 잠자리 한 마리가 수숫대에 앉으려다 못 앉고 바지랑대 갈퀴에 힘없이 앉았다. 가을이 한창일 때 온 하늘을 뒤덮듯 날아다니던 잠자리들은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어디로 없어지고 한두 마리만 풀숲 사이로 힘없이 날아다닌다. 시인은 그 쓸쓸하고 불쌍한 늙은 잠자리를 발견하고 눈을 뗄 줄 모른다. 조금은 장난스런 '마나님' '당신 눈이 무서워' 같은 표현이나 어색하게 꿰어 맞춘 듯한 마지막 두 행('감나무 마른 잎이/떨어집니다')이 시를 자연스럽게 읽기 힘들게 하고 꽉 짜인 7.5조가 답답하지만 힘없고 불쌍한 늙은 잠자리에 눈길을 주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늘에서 오는 눈은 어머님 편지
그리우든 사정이 한이 없어서
아빠 문안 누나 안부 눈물의 소식
길고 길고 한이 없이 길드랍니다.

겨울밤에 오는 눈은 어머님 소식
혼자 누운 들창이 바삭 바삭
잘 자느냐 잘 크느냐 묻는 소리에
잠 못 자고 내다보면 눈물 납니다.

(눈, 《어린이》8권7호, 1930.9.)

방정환은 눈을 좋아했다고 한다. 눈만 오면 새벽이라도 동무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니 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요를 보면 그 눈이 어머님 편지라 했다. 눈이 돌아가신 어머니 편지였으니 슬프면서도 얼마나 반가웠을까? 실제 방정환은 열아홉 되던 1917년에 어머니를 잃었다.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아이의 마음이 되어 눈 오는 밤에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정말 힘겹게 살았던 이 땅의 어머니들은 죽어서도 아이들을 마음놓지 못하고 '잘 자느냐 잘 크느냐' 물으며 주위를 맴돌 것만 같다. 눈 오는 밤의 포근한 이미지에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섞여 조용히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라도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그때는 비록 눈물을 흘렸을 지라도 힘내고 씩씩하게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에서 슬픔은 또 다른 힘일 수 있다. 방정환 동요는 쓸쓸하고 슬프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슬픔은 강제로 만들어 낸 억지 슬픔이 아니다. 자연물에 대한 따뜻한 눈길에서 오는 슬픔이며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슬픔이다. 방정환은 식민지 현실에 처해있던 겨레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 안고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슬픈 동요들을 불렀다.

20년대 대부분 동요가 자신의 개성을 못 찾고 막연한 감상에 머물렀던 것은 큰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런 슬픈 동요를 눈물주의, 감상주의라 하여 모두 버릴 필요가 있을까? 다만 방정환이 우리의 활달하고 건강했던 전래동요 전통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일본 율조인 7.5조의 정형률에 갇혀 있는 것과 감상을 넘어선 아이들의 세계에 좀더 다가가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글은 《아침햇살》98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심명숙회원은 우리회 어린이문학연구분과에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