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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감을 주는 배색


전통한복 배색의 대표적인 특징을 떠올려 보면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대비가 강한 원색들의 조화가 있으며 일조량이 많은 지리적 위치에서 생겨난 광명의 색인 백색白色을 바탕으로 한 다른 색상들과의 조화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음양오행적 철학을 담은 관념적 색들을 행복 지향적인 상징을 담아 풀어내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적 특색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자연이 펼쳐내는 다양한 색상들을 관찰하고 색에 대한 선명한 구분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기에 유채색들의 사용에 과감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 속에도 등장하는 봄날의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들이 주는 다채로운 색들과 파릇파릇한 초록색 잎들은 어린이나 부녀들의 일상복 속에서 저고리의 색으로, 치마의 색으로 그리고 남은 조각들은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색상대비나 조화를 이루는 조각보 속에 그대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색채 이론에 등장하는 대비와 조화 이론 가운데 한복 배색에 자주 이용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보색대비이다. 


대표적인 대비색들인 주홍과 파랑, 다홍과 초록, 노랑과 보라의 대비가 주는 느낌은 ‘생동生動’이나 ‘약동躍動’과 같은 인상들이다. 이들은 왕궁이나 사찰의 단청에서 볼 수 있는 원색적인 색상들의 대비들이 주는, ‘심장 박동을 뛰게 하는 생기’를 주는 색상 대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한복에 사용된 색들은 가슴을 뛰게 하는 배색이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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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인에게 붙여진 별칭인 ‘백의민족白衣民族’을 자칫 잘못 해석하면 ‘흰색 한복’을 주로 입는 민족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흰색이라는 무대 위에서 명·채도가 높은 원색들과 그 반대의 색들이 거침없이 조화를 이루며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는 해석을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제례를 중시했던 조상들에게 백색 상복은 늘 준비해 둬야 하는 옷 그리고 자주 입을 수밖에 없던 옷이기도 했겠으나 일상에서 쓰는 소품들은 색상이나 명·채도에 상관없이 늘 생활 속에서 백의와 함께 존재해 왔다. 망자를 보내는 순간에도 꽃상여에 올려지는 아름다운 유채색의 빛깔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깊은 슬픔보다는 뭔가 ‘새로운 삶’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았던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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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중시 여기는 철학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나라들 가운데 한·중·일은 전통적으로 음양오행 이론을 생활 전반에 적용하여 삶을 향유해 온 것으로 보이지만 복식에서 한국만큼 음양오행의 상징성을 표현한 나라는 없지 않을까 한다.


한복 자체가 상·하가 분리된 투피스 구조를 보이는 옷이므로 여성의 치마, 저고리나 남성의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와 외투가 되는 두루마기 같은 일상복을 보면 같은 색을 쓸 법 한데도 아이템 별로 색을 달리하는 재미난 양상을 접하게 된다. 이것은 ‘조화’라는 것을 크게 중요시 여기는 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음양오행설이라고 한다면 음양과 오행이 서로 상생·상극하면서 조화를 베풀어 새로운 변혁을 지속시킨다는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러한 관념을 복색에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또한 전통 복식에서 자연스레 만나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이 색을 사용하는데 드러난 사례는 조선 왕실이나 문무백관의 복식은 물론 서민들의 복식 생활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남아있는 유물이나 민속 복식 착용 사례들을 통해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상하의 배색을 음양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또는 안감과 겉감의 색상을 음양 이론을 담은 색상으로 사용하거나 혼례나 탄생과 같은 특별히 길조의 염원을 담아야 할 순간에 사용하는 색에는 색이 상징하는 의미와 그 배색이 모두 아름다운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한복을 입고 있는 ‘인간의 행복’을 염원하는 의식도 어쩌면 담겨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구성 하나 하나에도 ‘색’의 안배를 생각했을까 하는 질문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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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복의 배색, 기본과 트렌드의 조화


이렇듯 조상들이 누려온 또는 무의식적으로 지켜온 색에 대한 취향들은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유전자에 담겨서 현대에 누리는 한복의 배색도 여전히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원색들을 천연염색으로 살려 내어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런 멋이 우러나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색상 대비들을 현대 한복에서 많이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쪽빛, 치자빛, 제비꽃색, 홍화색 등은 채도와 명도가 높아 은은하고 우아한 느낌을 내고, 이와 달리 채도가 높고 명도가 낮은 수박색, 대춧빛이 감도는 다홍색은 강렬하고 절제된 맛을 주면서 한복 배색이 지니는 대비적인 조화를 보여주곤 한다. 최근 패션성이 강한 현대 한복들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위에서 정리해 본 세 가지 특징들이 비교적 유지되면서 트렌드와 착용 상황에 맞게 배색을 고려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가 되는 자연이 주는 빛들을 색으로 표현하여 심장을 뛰게 만드는 대비를 잘 구현하는 배색, 그리고 순수한 백색 바탕을 무대로 하는 개별적 색상들의 자기만의 역할을 배려 해주는 배색, 옷을 입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철학적 사유가 빚어낸 배색을 한복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글·사진. 김혜순 (한복디자이너)